Review/도서 2022. 1. 9. 02:54

[소설] 빛을 두려워하는

약 10년 전까지는 나도 책을 상당히 많이 읽는 편이었다. 못해도 한 달에 3권씩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었다. 어느 날,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던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쳐'를 우연히 읽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이후 이 작가의 작품도 한참 찾아 읽었다. 특히 '모멘트'는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강하게 남아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슬펐었다. 군 전역 이후로 거의 책을 잘 안보게 되었고 그러면서 글과 거리가 멀어졌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 나도 내 언어능력과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해 독서 습관을 들이기를 목표로 정하고, 새해를 맞아 서점을 다녀왔다. 마침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빛을 두려워하는'이 눈에 보였고, 새해 첫 독서는 역시 익숙한 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빛을 두려워하는'은 기본적으로 우리 주변에도 충분히 있을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로스엔젤레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최근 낙태, 또는 임신 중절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다. 특히나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의제로 떠오른 이후에 더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인간의 신체구조 상 여성만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성 역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의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 중절 합법화 문제의 찬반을 가르는 가장 큰 핵심은, 태아를 세포가 아닌 생명으로 볼 시기가 어느시기부터인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은 산모의 신체와 정신에 너무나도 큰 부담을 주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심지어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임신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고통과 심정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남성이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나 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내 생각은 우선 임신 중절 찬성 측의 입장에 가깝다.

생명 중시의 입장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모의 안전과 선택권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보통 임신 중절을 생각한다는 것은 계획에 없던 상황에서 임신하는 등 아이를 키울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시점일 가능성이 큰데 경제적 또는 물리적으로 아이가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또 다른 학대와 폭력으로 번지거나 이후에 생존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상황이야말로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후로는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혹시나 내용을 직접 책으로 읽고 싶다면 여기까지만 읽는 것이 좋다.



이 소설에서는 찬성하는 입장의 인물과 반대하는 입장의 인물이 갈등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갈등을 주제로, 그 뒤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힘을 더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갈등을 겪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얻은 것 없이 피해만 보지만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은 그 갈등을 조장한 돈과 힘이 있는 자였다.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선가처럼 살아간다.


현재 우리 사회도 같은 모습이다. 전쟁을 해서 피해를 보는 쪽은 소시민이지만 이익을 얻는 쪽은 자본가이며, 이는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이념, 사회갈등의 싸움에서도 결국 무엇인가를 얻는 쪽은 갈등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발 물러서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이다. 한국사회의 문제인 줄 알았더니 이 소설로 봐서는 인류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숙제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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